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총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총회 부총회장)

13신앙실업인동지회 결성은 하나님이 우리 교단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13신앙동지회는 우성기 장로의 제안으로 시작된다. 우성기 장로는 당시 섬기던 대구중앙교회가 WCC를 찬성하는 통합측으로 가게 되자 WCC를 반대하는 성도들과 그 교회를 나와 서성로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때 우성기 장로는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백남조 장로에게 개척교회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연보를 받는다.

우 장로는 이때 자기교회만 도움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백남조 장로를 중심으로 총회의 유력한 장로들을 엮어서 총신과 총회 발전을 위하여 13신앙실업인동지회를 조직한다. 마침내 전국에 있는 13명의 장로들이 1963년 7월 9일 부산에 있는 백남조 장로 댁에 모이게 된다. 이때 대구서현교회를 섬기는 윤철주 목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였는데, 설교 중 자신이 공부한 미국 커버넌트신학교의 예를 들면서 13신앙동지회가 총신을 세우는 데 헌신할 것을 제시하였다.

당시 모인 13명이 13동지회를 이루었으니 ‘김인득, 김정국, 김추호, 권운현, 박기동, 박기수, 박찬수, 방남준, 백남조, 양재열, 우성기, 장지동, 정규만 장로’였다. 이 분들이 총회가 내놓은 총신신축 5개년 계획에 동참을 하게 되고 김윤찬 목사를 미국에 보낸다. 총신신축 5개년 계획 예산은 35만7000달러였는데, 김윤찬 목사가 25만 달러를 약정 받아왔고 5만 달러를 현찰로 받아왔다.(지난호의 5만 달러 약정을 25만 달러로 정정함) 그리고 나머지 필요한 10만7000달러를 전국적으로 13동지회가 중심으로 해서 모으는 운동을 했다.(지난호의 1만7000달러를 10만7000 달러로 정정함)

그런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게 13실업인 중에서 백남조 장로의 헌신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백남조 장로를 헌신케 한 동기는 이환수 목사의 역할이 컸다. 당시 이환수 목사는 서울청암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는데 백남조 장로가 섬기는 부산의 부전교회에 내려가서 부흥회를 하면서 총신 신축에 헌신을 하도록 백남조 장로를 설득한 것이다.

그래서 백남조 장로는 총신 신축을 위해 무언가 결심을 해야겠다고 하던 중 당시 이사장이던 노진현 목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노 목사님, 신학교를 지으려면 누군가는 십자가를 져야 할 텐데 제가 부족하지만 학교 부지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노진현 목사는 너무나 뜻밖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하여 백 장로의 손목을 잡고 눈망울에 이슬을 맺힌 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 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장로님의 이 갸륵한 뜻은 하나님이 우리 신학교에 내리신 큰 축복입니다. 장로님의 헌신으로 인해 우리 총신은 반드시 기틀을 잡게 될 것입니다.”

당시 백남조 장로는 부산에서 광목을 표백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런 엄청난 헌신을 총신을 위하여 하겠다고 하니 모두들 놀랐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때 백 장로는 집도 없이 공장 안에 있는 조그만 양철집에 노모를 모시고 여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백 장로의 기업이 형통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중에도 그는 총신신축을 위하여 사당동에 1만8000평을 매입하여 총회에 헌납하게 된 것이다.

이 눈물겨운 백 장로의 헌신은 우리 총신과 교단 역사에 불멸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아니, 천년의 바람에도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황금서판에 새겨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총신종합관을 백남조기념관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은 너무도 잘한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의 장남 백성기 장로가 한 회기라도 총신재단이사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법이 허락한다면 백성기 장로를 명예이사장으로라도 위촉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 본다.

오늘날 우리 교단의 새로운 50년, 100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3신앙동지회 같은 장로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백남조 장로 같은 분이 나타나야 한다. 오늘 우리 교단의 장로들은 어떠한가. 또한 전국장로회의 성격과 방향과 목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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