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목사(혜림교회)

오늘 예수님을 자랑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눅 16:28)
 

김영우 목사(혜림교회)
김영우 목사(혜림교회)

한 해의 끝을 향해 가는 12월에 잠시 유언을 생각합니다. 유언에는 그것을 남기는 자의 절박함과 간곡함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해 주셨던 부모님의 유언은 자녀의 마음에 오래 남는 잠언이 됩니다. 그런데 부모도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유언으로 당부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지상의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며 인간에게 주신 유언은 한 가지였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태복음은 그것을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주님의 유언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피할 백신을 놔두고 자녀에게 다른 주사를 맞게 할 부모가 없는 것처럼, 사람을 살리는 길이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에 유일한 구원의 길인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유언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전도’ 혹은 ‘성도의 지상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의 한 사람이 지상사명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참 귀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8절입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번 듯 합니다. 성경은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저 지옥에 떨어진 부자라고만 부릅니다. 이름조차 거명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신 듯합니다. 성경은 그가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서 부자가 됐는지, 가난을 이기려고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 자수성가했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부자도 모든 인생이 가는 길인 죽음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가 고통의 지옥에서 천국을 보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부자가 세상에 살 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로를 안다는 것이 하늘의 연민을 자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물 한 방울의 위로를 호소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4~25)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물 한 방울의 은혜도 없는 곳이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옥에서 그것을 절감함과 동시에, 피맺힌 소원이 그 안에 솟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기회를 갖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의 안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늦었지만 아직 죽지 않고 저 땅에서 살아있는 내 가족 내 형제는 예수 믿고 나처럼 지옥에 오지 않게 해 주옵소서”라고 절규합니다.

“내 형제…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8) 그의 소원은 전도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지상명령,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의 전도에 대한 갈망은 처절한 영혼구원의 갈망이요, 피맺힌 복음전파의 호소였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그렇게 전도하려 했습니다. 가상하고 고귀합니다. 그런데 거절당합니다. 기회가 지나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가족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강권합니다. 전도가 비록 힘들고, 때로는 놀림감이 되는 수치가 따른다고 해도 지금 전도하십시오. 오직 이 땅에서만 누리는 지금의 특권으로 알고 전도하십시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특별히 세상이 미련하다고 하는 하나님의 방식인 선포와 설교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을 건지십시오.

고린도전서 1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본문의 ‘전도의 미련한 것’도 탁월한 번역입니다만, 킹제임스 영어성경이 잘 번역해 두었습니다. ‘Foolishness of preaching’(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그렇습니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말씀을 설교하십시오. 지난주에 들은 강단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말씀선포를 통해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태도와 선한 행위로 전도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면 전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일부분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위험한 주장입니다. 성경적이라기보다는 인본적인 정신이 묻어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모범을 보이지 않으셔서 죽으셨습니까? 정말 교인들이 모범적인 삶을 살면 세상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도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요, 죄인인 사람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다른 이의 선한 행실을 보고 기독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 먼저 분명한 말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명령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15)

전도는 먼저 말로 전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신자일수록 전도를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꽤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물론 교회를 오래 다닌 성도 가운데서도 주님의 지상명령을 굳건히 붙들고, 힘을 다해 전도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가 초대교회나 초기의 한국교회에 비해 전도에 매우 게으른 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어쩌면 교회의 모든 문제의 뿌리일 수 있습니다.

사탄은 기본적으로 전도를 방해하거나, 성도들에게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만이 전도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전도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다니는 교회로 데리고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신을 전도한 이가 다니는 교회로 출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꼭 그 교회로 데려오는 것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는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전도를 명하시고, 거기에 복을 달아두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지금은 한해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과연 몇 명에게나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은 교회로 몇 명이나 데리고 왔느냐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자랑했냐는 뜻입니다. 복음전파는 주의 명령입니다. 예수님 자랑은 인생의 사명입니다. 그저 여러분은 예수의 씨만, 복음의 씨만, 전도의 씨만 뿌리십시오. 하늘에 계신 그 분이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씨를 뿌리는 것이 우리에게 맡기신 영역입니다. 그리고 가을이 돼서 씨 뿌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올해가 이 땅의 마지막 해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줄 마지막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람들에게 설교하십시오. 오늘 예수님을 자랑하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지옥에서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전도를 시도하였지만 기회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전도의 영광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이 부자는 이렇게 고함칩니다. “오늘 사람들에게 설교하십시오. 오늘 가족들에게 예수를 말하십시오. 나처럼 어리석은 생을 살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바울 사도가 외치며 살았던 그 길이 진정 행복한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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