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덜 쓰고 더 나누는’ 기독교 환경윤리 실천 앞장 섭시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 9절)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송준인 목사(청량교회·총신대학교)

심각한 지구 환경

현대인은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유일한 삶의 공간인 지구 환경이 훼손되어 공기, 물, 땅이 오염되고 있다. 또한 유한한 자원이 개발로 인해 고갈되고 있다. 각종 배기가스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고, 이산화탄소나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상 이변들이 일어나고 있다.

환경문제는 이제 인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환경문제에 대해 기독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과거 이집트는 땅이 비옥해서 유럽의 곡창이라고 불렸고, 이스라엘 자손도 비옥한 이집트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 이집트가 지금은 사막이 되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호수는 어부들의 생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황폐하고 메마른 땅이 되었고, 이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만으로 살 수가 없다. 이 예들은 우리가 땅의 단물만 빨아 먹고 땅을 돌보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됨을 말해 준다.

기후 문제

전 세계에 존재하는 핵무기의 위력은 인류를 수십 번 죽이고도 남는다. 그런데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인류는 환경오염으로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남극 상공의 절반, 칠레 상공의 1/4의 오존층이 파괴되었다. 북극 상공에도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북반구의 오존층도 평균 3% 정도 얇아졌다. 냉장고나 에어컨 냉매 및 분무추진제로 쓰이는 염화불화탄소 등이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다.

석유와 석탄을 사용하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여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지구에 있는 석탄과 석유를 다 사용하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지금보다 5배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면 빙하는 다 녹고, 해수면이 60m 올라가게 되어 세계 대부분의 농경지와 주거지가 물에 잠기게 된다.

‘엘니뇨’란 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이다. 남미의 페루와 에콰도르의 국경 지대에 따뜻한 해수가 유입되어 평소 볼 수 없었던 어종이 나타나서, 페루 어민들이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고 불렀다. 

하지만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2~5도 높아진 상태가 반년 이상 지속되자, 이번에는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격감하여 멸치(앤초비)가 멸종을 했다. 이것이 엘니뇨현상이다.

그 반대 현상이 ‘라니냐’인데, 해수면의 온도가 5개월 이상 평균 수온보다 낮은 현상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동남아시아에 폭우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페루를 비롯한 남미는 심하게 서늘해지고 건조해져 가뭄이 들게 된다. 우리나라 겨울철에 이상 추위가 지속되는 것도 라니냐현상 때문이다.

동식물의 멸종

산성비로 인하여 삼림과 호수가 죽어가고 있다. 1년이면 남한 면적의 땅이, 30년이면 인도 대륙만한 땅이 울창한 삼림에서 완전한 사막으로 변한다. 현재 전 대륙의 1/3이 거의 사막이 되어, 동식물들이 놀라운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은 ‘멸종 위기 동식물 목록’을 발표했는데, 총 1만1167종의 동식물이 위기에 놓였고, 영양(사슴)의 일종인 아시아의 사이가(saïga)와 야생 쌍봉낙타, 이베리아의 스라소니가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이다.

현재 아시아 코끼리는 수컷 중 일부만 상아를 갖고 있는데 중국, 한국, 일본인의 상아 탐욕 때문에 암수 균형이 깨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코뿔소의 뿔이 녹용보다 좋다는 소문에 1kg도 안 되는 작은 뿔을 얻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포획하여 코뿔소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소위 정력제라고 알려진 해구신을 얻으려 물개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으며, 가죽과 뼈를 얻기 위해 호랑이를 밀렵하여 씨가 말라가고 있다. 밍크코트 한 벌을 위해 밍크 40마리가 포획되고, 샥스핀 중국요리 때문에 상어가 멸종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과시욕, 건강보조식품 등이 동식물 멸종의 원인이 되고 있다.

덜 쓰고 더 나누자

오늘날 환경위기의 원인 중의 하나는 무제한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소비 생활 양식에 있다. 소비의 증대와 더불어 제한된 자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서 오염 배출량이 늘어남으로써 환경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환경위기는 풍요로운 소비생활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물론 소비계층은 제한되어 있다. 세계 인구의 20% 밖에 안 되는 서구의 국민들이 지구 자원의 80%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지구환경 위기의 대부분의 책임이 이들 계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세계의 모든 사람이 현재 미국이나 서유럽 같은 소비생활을 영위한다면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소비수준을 지탱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윤리 원칙은 미래 세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그러기에 소비계층의 에너지 사용방식과 자원사용, 상품구매 등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들의 물질적 소비수준을 한 단계 낮추면서도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기독교 환경윤리는 무엇보다 개개인을 윤리의 주체로 파악한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사회,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구조적 문제이기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환경문제는 각 개인 의식과 삶의 방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환경윤리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덜 쓰고 더 나누는 것이다(Less Consumption, More Sharing).

그리스도인의 책임

이 땅이 인간의 욕심과 죄악으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은 일밖에 없다. 그 작은 일들이 이 땅과 인류를 살리는 데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작은 힘들이 모여 큰일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에너지와 자원을 아껴 쓰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재활용하고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냉매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분무약품의 사용도 삼가야 한다. 중금속이 든 건전지나 농약 같은 화학약품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수질 오염을 일으키는 것들을 사용하거나, 그런 것들을 싱크대나 하수구에 함부로 버려서도 안 된다. 이런 작은 일에 동참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게 된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한다고 해서 환경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망이 비관적이라 해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들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부터 실천을

어떤 목사는 지금까지 샴푸 대신 비누로만 머리를 감는다. 어떤 음식점 주인은 폐식용유를 모아 가성소다와 물과 폐식용유의 비율을 0.152kg:0.28리터:1리터의 비율로 정확하게 맞추어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 사용한다. 어떤 주부는 1주간 모은 쓰레기가 가장 작은 쓰레기봉투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떤 교회는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생명밥상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은 건강한 먹거리로 밥상을 차려 공손히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으므로 몸과 마음, 하나님의 창조 세상을 살리는 운동이다.

우리도 환경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서약식을 거행해 보자.


    약

1. 우리는 인간 생명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관심을 갖고 존중하는 가치관을 지닌다.

2. 검소하고 나눠 쓰는 생활방식을 귀한 믿음의 덕목으로 여기며, 이를 널리 확장해 나가는 운동을 펼친다.

3.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편의주의적 삶의 문화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환경을 재창조하고 보전하는 일에 투자한다.

4. 오염된 물과 공기와 땅을 회복시키는 생활지침을 정해 신앙실천으로 지킨다.

5.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아름답게 회복되어 온 생명이 기쁜 날(희년)을 맞이한다는 말을 간직하고, 환경보전운동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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