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적을 믿는 소녀〉개봉
기도로 치유·신비 연이어져
“영화적 허구 허용범위 논란”

영화 의 주인공 사라가 호숫가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서 그의 오빠와 여자친구에게 “보여?”라고 묻고 있다.
영화 의 주인공 사라가 호숫가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서 그의 오빠와 여자친구에게 “보여?”라고 묻고 있다.

기독교 영화는 영화계의 불황 가운데도 꾸준히 국내에서 상영되어 왔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영화관이 된서리를 맞아 상대적으로 매우 소수 계열인 기독교 영화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모바일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해 일반인들의 안방극장까지 파고들었다.

그런데도 영화관을 통해 기독교 영화가 대중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수많은 할리우드와 국내 거대 자본을 토대로 만들어진 메이저 영화들이 상영관을 차지하는 가운데 기독교 영화들이 끼어들 공간은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두 차례 상영되거나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인 주일 오전에만 걸리는 영화 배정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기독교 영화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고 신앙의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또 불신자들을 초청해서 신앙으로 인도하는 전도용으로 활용하는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어린이를 통해 의심 없이 믿으면 오늘날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어린이를 통해 의심 없이 믿으면 오늘날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편으로 기독교 영화는 영화적 사실과 성경 내용과의 차이 때문에 자주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들어오던 사건이나 인물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신들의 전쟁>, <노아>와 같은 영화는 많은 관객을 동원한 만큼 설전도 많았다.

최근 굿티비(GOODTV)가 배급을 맡은 영화 <기적을 믿는 소녀>가 7월 5일부터 전국의 상영관에서 선을 보였다. 이를 기념해 7월 6일에는 CGV 영등포 상영관에서 초청 상영회를 열었다. 이 영화도 보는 이에 따라 기도, 기적, 하나님의 형상 등을 두고 서로의 견해를 토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영화는 한 미국의 단란한 가정의 소녀가 집 근처 호숫가로 가서 죽은 새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녀는 가여운 마음에 기도를 하고 놀랍게도 죽었던 새가 살아난다. 또 차에 치인 개를 위해 기도했더니 개가 일어나고, 심지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에 빠진 친구도 기도로 일으킨다.

이 정도가 되니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고 소녀의 집으로 병자들이 찾아온다. 한편에서는 치유를 위해 소녀에게 매달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적을 믿기보다 소녀가 정신적인 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이상한 일은 병자들을 고치면 고칠수록 소녀는 몸이 쇠약해지고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소녀는 꺼져가는 생명을 견디면서 주위에 “처음에 새를 발견해 기도 응답받았던 호수로 데려가 달라”는 소원을 부탁한다.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사람들과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측으로 의견이 나뉜다. 결국 전자의 사람들이 소녀를 몰래 호숫가로 데려가고 뒤늦게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폭풍우가 치는 밤 중에 호숫가에 도착한 모든 사람은 소녀의 영혼이 호숫가로 이동해 예수의 형상으로 보이는 존재와 만나는 것을 목격한다. 더 기이한 것은 소녀를 다시 집으로 옮긴 뒤 소녀가 호흡을 다시 찾고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치유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소녀의 사건 이후 과거에 자리가 듬성듬성했던 예배당은 꽉 들어차고 마을은 활기가 가득해진다.

소녀는 사람들에게 강조한다.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이 영화 시사회가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퇴장하는 한 관객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은혜로 봤다”고 답했다.

영화는 사실을 영상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상상력의 산물일 때가 많다. 일상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영화에서는 드러낼 수 있다. 기독교 영화에서 기적이나 하나님의 형상이나 천국의 모습 등이 그려지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양해가 될 수 있다. 수작으로 평가되는 <오두막>에서 딸을 비참하게 잃은 주인공은 악몽 같은 사건이 있었던 오두막에 가서 중년의 여성, 젊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난다. 여러 영화 특히 외국에서 수입한 드라마 규모의 기독교 영화들에서도 사후세계나 하나님의 형상, 천사 등이 비친다.

기독교 영화라고 해서 영화적 상상력을 활용하지 않고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없이 성경대로 제작할 필요는 없다. 감동을 주고 성경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기독교 영화의 목적인 신앙 강화와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제 의식과 설득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형상화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메시지에 녹아들고 성경적 본질을 짚어준다면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메시지보다도 기적이나 신의 형상이나 하는 것들이 잔상으로 더 오래 남는다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좋은 기독교 영화가 오래도록 사랑받아 성도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전도의 목적을 달성케 하는 최종적인 역할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분별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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